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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3 휴가지 ‘베개’ 잃어버린 소동 by 김진애 (12)
  2. 2008/07/17 '딸‘은 완벽하다 by 김진애 (7)
  3. 2008/07/12 미국 헤이마켓에서 곱창살 때가 좋았다 by 김진애 (15)
  4. 2008/07/09 먹거리 재발견의 시절입니다 by 김진애 (6)
  5. 2008/07/06 물과 불로 하는 황홀한 장난, 요리 by 김진애 (3)
  6. 2008/03/09 즐거워서 행복한 삶 by 김진애
  7. 2008/02/28 여자의 삶은 ‘의외로’ 멋지다? by 김진애 (1)
휴가지 ‘베개’ 잃어버린 소동

“어머나, 내 베개!” 차는 마산시로 막 접어들고 있었다. 잠깐 눈을 붙이겠다고 뒷좌석에 던져둔 베개를 집으려다가 깨닫고 말았다. 이런, 호텔에 두고 왔구나. 나에 대한 비밀.....

혁신도시, 적극적으로 승계하라

내 그럴 줄 알았다. 이명박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에 대해서는 참여정부의 맥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정책 이름을 ‘균형발전’에서 ‘지역발전’으로 바꾼다 하더라도, ‘광역경제.....

'딸‘은 완벽하다

나는 딸딸 엄마고 나의 남편은 딸딸 아빠다. 아들만 있는 엄마 아빠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딸의 존재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다. 기를 때 ‘아.....

나라 망신시키는 6가지 요령

요즘 시대에 우리는 누구나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다. 국제외교를 담당하는 외교관뿐 아니라, 해외비즈니스, 유학, 여행 뿐 아니라 해외상품에 대한 구매를 하고 인터넷으로.....

“어머나, 내 베개!”
차는 마산시로 막 접어들고 있었다. 잠깐 눈을 붙이겠다고 뒷좌석에 던져둔 베개를 집으려다가 깨닫고 말았다. 이런, 호텔에 두고 왔구나.

나에 대한 비밀 아닌 비밀 중 하나. 마치 어린아이처럼 여행 다닐 때 내 베개를 들고 다닌다. 베개 깃을 빨 정도로 유아적 버릇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고^^, 그 베개가 없으면 잠을 잘 못 드는 정도다. 장장 20년을 나와 함께 한 베개다.

“쯧쯧, 그걸 왜 두고 와?” 운전하던 남편이 내 부르짖음에 더 놀랐다. 그 베개 사연을 잘 아는 목소리에는 “야, 이거 큰일 났구나. 단단히 괴롭히겠구먼.” 하는 톤이 담겨 있다. “난 잘못한 거 없어.” 절대로 잃어버리는 일이 없는 이 남자의 자기 변론이다. 나도 그렇지, 왜 챙겨 달라고 부탁을 안 했을까? 밤새 차에서 혼자 잔 우리 개 울럼이의 안부가 궁금해서 새벽에 눈뜨자마자 나와서 반가워하는 울럼이와 놀아 버렸던 것이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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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했을 것 같니?” 집에 돌아와 두 딸에게 물었다.

“찾으러 다시 호텔로 돌아갔지.” 엄마 냄새가 그렇게도 좋던 일곱 살 시절, 내 베개 상속 약속을 받아 냈던 막내의 당연하다는 말투다. “땀 냄새, 침 냄새가 뭐 그리 좋으니?” 하던 아빠 구박에도 꿋꿋했고 지금도 사라졌다 싶으면 막내가 이 베개를 안거나 덮고 자고 있다.(통상적인 베개의 3배 크기라 배와 가슴을 덮기에도 제격이다. 이제 나달나달해졌지만 쓸모는 여전히 굳건하다.) 호텔을 떠난 지 4시간인데 다시 돌아가란 말이냐? 그건 말도 안 된다.

“오다가 새 베개를 샀어.” 예전에 베개 가져가는 걸 잊어먹었던 여행길에서 새 베개를 사 왔던 걸 보고 ‘쯧쯧’ 했던 큰딸의 말이다. 그러더니 다른 이야기를 펼친다. “아니, 이렇게 된 거야. 오다가 우연하게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그 호텔에 숙박했다가 놓고 온 베개를 가지고 온 거야. 그래서 찾았어.” 기상천외한 우연의 상상력이라니.

한바탕 웃고 난 두 딸은 이제 현실적이 되었다. “호텔에서 전화가 온 거야.” 그런데 그 호텔은 말이 호텔이지 숙박일지도 안 적는 여관급이다. 우리 남녀의 여행 습성은 끝없이 달리며 놀고먹다가 졸음 올 때쯤이면 적당한 데 찾아서 들어가 자고 새벽에 나와서 다시 달리는 것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통영에서 거제도로 들어가서 해변을 따라 달리며 해금강을 보고, 장승포에서 해변 언덕의 바람맞이, 노을맞이를 울럼이와 함께 하고 나서는 맛있는 회 먹고 멸치 사고, 대우조선 공장 근처의 퇴근길 정체를 실감하며 옥포의 거의 서울 같은 풍경에 놀랐다가, 이름도 모를 해변 마을을 몇 지나고, ‘덕포’ 해변의 그럴듯한 호텔에 기어 들어가 잠을 잤다. 밤 아홉시에 들어가서 새벽 다섯 시에 나왔다. 호텔 이름도 모른다.

“아빠는 ‘잊어버려야지, 뭐.’ 그랬겠지!”
“그런데 엄마가 포기할 리가 없지!”
두 남녀의 본성을 꿰뚫고 있는 딸들의 멘트다.

그렇다. 나는 ‘114 전화번호 안내’로 전화를 걸었다. 이름도 모르는 호텔을 어떻게 찾냐고? “거제도 ‘덕포비치호텔’요.” 해변에 있으니 ‘비치호텔’일 듯싶었고, 덕포에 있으니 ‘덕포비치호텔’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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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런 이름의 호텔이 있었다. 전화번호를 돌려서 확인한 것,
“해변에 지붕 동그란 호텔 맞나요?”
호텔의 모양을 새겨 둔 내 훈련된 눈썰미가 들어맞았다. 가장 중요한 단서였다. 방 번호는 정확히 기억한다. 복도에서 헤매다가 입에 방 번호를 붙였었기 때문이다.

“간밤에 508호에서 잤는데요. 뭘 하나 두고 왔거든요?”
“뭔데요?”
 쪽팔리는(?) 기분으로 “저, 베갠데요...”
“베개요?”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당혹한 듯한 목소리.
 
“원래 호텔 거 두 개 말고 하나가 더 있을 거예요.
워낙 정든 베개라서요. 우리 아이들도 좋아하는 베개거든요.”
정을 듬뿍 담은 목소리를 내려고 애를 쓰는 나의 이 안타까운 몸부림이여! 아직 방청소 전이라 모른단다. 찾아서 수취인 부담으로 택배로 부쳐 달라고 부탁을 했다.

오후에 다시 호텔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 목소리가 아침과 다르다. 대뜸 하는 말, “얘기는 들었는데요, 베개 없어요. 간밤에 508호에는 사람이 안 잤어요.”
(이 대목에서 얘기를 듣던 막내딸이 갑자기 새파래졌다. ‘그럼 귀신이 잤단 말이야?’ 하는 납량특집적인 표정이라니^^.)
“저희가 밤에 들어가서 새벽에 나왔는데, 어떤 젊은 아저씨한테 열쇠 받고 열쇠 주고 왔거든요?” 나는 자초지종을 얘기한다.
아줌마는 요지부동이다. “아무도 안 잤어요. 장부에 안 적혀 있어요.” 이때 핸드폰이 뚝 끊어졌다.

도대체 무슨 일? 이 호텔이 아닌가? 방 번호가 틀린가? 귀찮아서 모르는 척하나? 혹시 그 젊은 아저씨가 장부에 안 적고 숙박료를 슬쩍한 걸까? 새벽에 우리가 나오자마자 방을 깨끗하게 치운 걸까? 만약 그렇다면, 내 베개는 지금 어디에 있지? 갑자기 쓰레기통에 쑤셔 박힌 베개, 바다에서 익사했거나 불태워져 버린 내 베개 모습이 떠오르며 내 머리가 쑤셔 박힌 듯, 익사하는 듯, 불타 버리는 듯한 아픔이여. 영화를 봐도 너무 많이 봤나 보다. 다시 돌아가야 하나? “베개야, 미안해.”

다시 핸드폰이 연결되기까지 15분 동안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전화가 연결되자, 그 아줌마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던지 접수받은 사람이 어떤 인상착의인지, 숙박료를 얼마 치렀는지 묻는다. 밤에는 경비 겸 남자 아르바이트를 쓴단다. “오늘 밤에도 일하시나요? 꼭 물어봐 주실래요?”
나는 필사적이 되었다. 조금 있으면 현상금이라도 걸 판이다.

갑자기 아줌마가 다른 아줌마를 바꿔 준다. 이건 또 왜 이러지? 아침에 전화 받았던 목소리다. “베개 찾았어요.” 안도의 가슴이여. ‘고맙습니다’를 몇 번 하고 꼭 부쳐 달라 몇 번 하고, 나는 푸근한 마음으로 해인사를 거닐며 부처님께 감사의 절을 여러 번 올렸다.

며칠이 지나도록 베개는 오질 않는다. 다시 전화를 걸자 또 다른 목소리. “그 베개 얘기 들었거든요. 부쳤는지 아닌지 잘 모르고요. 안 부쳤으면 내일 꼭 부칠게요.” 피식피식 웃는 기색이 완연하다. 내 말이 길어질까 봐 걱정인지 따발총으로 얘기한다.

다시 이틀 뒤, 거제도 토종 ‘멸치 박스’에 싸여서 깃털처럼 가벼운 베개 박스가 도착했다.
아, 내 베개! 도대체 이 베개는 나에게 무엇인가? 정신 감정이라도 한 번 받아봐야겠다. 베개와 나와의 관계, 베개를 통한 나와 가족과의 관계, 베개에 대한 사람들의 연상 작용, 베개라는 물건의 중차대한 의미를 나는 새삼 깨달았다. 아주 유용한 ‘덕포 베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 내내 내 베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080303 일요일 아침 김진애 생각

여러분께 드리는 저의 휴가 서비스 이야기 입니다. 휴가지에서 벌어진 소동 누구나 한 두가지 갖고 있으시지요?

위에 적은 사건을 생각하면 항상 웃음이 터집니다. 남들은 아무것도 아닌 소동이라고 여기겠지만 본인에게 너무 중요한 것을 잃고 다시 찾은 사건은 정말 각별하답니다. 헛소동도 그런 헛소동이 없었지요?
그 베개는 지금도 저랑 같이 한답니다. 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같이 할 것 같답니다...^^

지난 주 저도 휴가였습니다. 정말 무덥지요? 다음 주까지가 휴가 피크이겠지요. 다음주는 장마비도 그쳐서 바짝 더운 휴가가 되겠군요. 좋은 시간을 보내십시오. 가능하면 비용 적게, 가능하면 스트레스 덜 받는 방식으로. 요새 휴가도 만만찮은 스트레스이니까요... 국내 휴가가 많이 늘었다니 고유가시대, 고물가시대를 실감하게 됩니다. (남이 잘 안가는 작은 곳을 찾아보세요. 사람도 적고 물가도 상대적으로 싸고, 무엇보다 극성스러운 상혼에 상처받지 않아서 좋지요. 거제도는 곳곳에 작고 조용한 곳이 많지요. 덕포도 그 중 하나입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 나라, 워낙 좋은 곳이 구석구석 많답니다.)

요새 워낙 스트레스 높은 사건들이 많아서, 뉴스 안듣는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휴가가 되지요. 갔다오고 나서가 문제지만요... 오늘 일요일 까지 저는 책읽으며 요리해먹으며 쉬엄쉬엄 보내렵니다. 더위 이겨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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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재훈 2008/08/03 18:0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어쩌다가 블로거뉴스보다가 찾아뵙게되네요. 저도 19살인데..저보다 2살많은 토끼인형이있습니다. 다찢어질대로 찢어진거,아버지께서 꿰매주셔서 아직 잘살아있답니다. 제가유학중인데요, 현지인 친구네집에가보니 10년된 이불이있더군요...모서리부분만 좋아하던데 외국에서나 모국에서나 저와 비슷한분 만나니까 너무반가워요^^

    • BlogIcon 김진애 2008/08/03 1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21살 짜리 토끼 인형이라, 민재훈님 좋은 아빠랑 행복하시네요. 알뜰살뜰 뿐 아니라 정서적 고리를 만들어주는 아빠. 이른바 '센티멘털 벨류(sentimental value)'라는게 우리 사람들을 살 맛나게 해주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 '새것, 비싼 것' 밝히는게 좀 정나미 안나요. '오래된 것, 가까운 것, 우리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을 아끼는 것이 유행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토끼 오래오래 장수하기를... 제 베개도 저와 함께 장수하고 또 우리 딸이 상속해간다니까요.^^

  2. 블라디미르 2008/08/03 23:50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별 해괴한 사연이 다 있군요. 베게와 얽힌 사건이라...

    • BlogIcon 김진애 2008/08/04 0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 인생은 예기치 못한 새로운 사연의 연속인 것 같답니다. 덕포 베개 사건에서 제 베개를 못찾았으면 정말 우울해졌을 것 같아요.^^ 그 때 베개 찾아 보내준 이름 모를 그 아주머니에게 지금도 다시 감사. 거제도 '멸치박스'를 봤을 때 또 얼마나 웃었던지요...

      인생에서 벌어지는 온갖 해괴한(?) 사건들에서 웃음을 찾으시기를. 블라디미르님.

  3. 아름다롱 2008/08/04 10:00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아직도 애착하는 물건이 있다니 왠지 부러운데요? 제 아들도 오랫동안 안전담요를 손에 떼지 못했지만 지금은 식구가 모두 그런 물건이 없는데 이글을 읽고 보니 지금부터라도 하나 만들고 싶어지네요 ㅋ 나 왜 부럽지???

  4. BlogIcon Ryan 2008/08/04 10:18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가끔 외국 나가보면 배낭에 자기 베게 얹고 다니는 분들을 심심찮게 본답니다. 특히나 여자분들이 많이 그러시더라구요.

    그러니 그리 특이(?)한 습관은 아니신겁니다. ^^

  5. BlogIcon 김진애 2008/08/05 05:16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아름다롱님의 '아직도 애착하는 물건이 있어 행복하다'는 말씀을 들으니 괜히 행복해지는 걸요. 행복은 작은데서 온다는 말이 맞는 모양입니다.^^

    Ryan님, 안그래도 베개 들고 여행간다는 말을 하면, 주변에서 막 웃어서 제가 너무 유치한가 했는데, 제가 그리 이상한 건 아니라 안심이 됩니다. 주변의 여성 베낭여행가에게 한번 여쭤봐야겠네요...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는 것이 괜찮은 느낌이 드네요

  6. chichi 2008/08/19 09:49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는 프랑스에 여행갔다가 엄마가 처녀시절부터 써오시던 머리띠를 민박집에 두고 와서
    지금도 가슴이 아파요.ㅠ
    이미 차편,숙박편이 예약된 여행일정 때문에 그냥 왔는데 지금도 한번씩 생각나면 아쉬워서 잠이 안 오네요. 그 민박집 다시 전화해서 (국제우편으로!) 보내달라고 할껄 그랬나봐요.^^;;

    • BlogIcon 김진애 2008/08/21 0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특히 엄마 것을 잃어버리면 더 맘 아프지요. 저도 엄마가 직접 뜬 덧버선을 아낀답니다. 아직 엄마 튼튼하실 때 또 뭔가 만드세요. chichi 님.

  7. 박종열 2008/08/20 11:4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안녕하십니까? 건설기술건축문화선진화위원회에 근무하던 강원도(춘천) 박종열 입니다. 오랫만에 인터넷상으로 위원장님을 만나뵙게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건강하시죠? 베개사건?? 위원장님한테 그런 면이 있으셨던가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자주 들리겠습니다.

    • BlogIcon 김진애 2008/08/21 05: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계시지요. 박종열님. 위원회에서는 너무 공식적인 상황이라서 제가 꽤 무게 잡았던 모양이지요? ^^ 보면 여러 유치한 면이 있답니다.^^ 베이징 올림픽 기간동안 새 글을 못올리고 있는데, 옛 지인들이 찾아주시니 반갑네요. 컴을 자유자재로 못쓰는 형편에 있어서요. 건강하세요.

  8. 삼천리 2008/09/02 16:35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저는 산본에 삽니다.
    꼭대기층에 사는데 거실창으로 보이는 반야봉 비스무리한 두개의 봉우리가 좋답니다.
    반갑습니다.
    등록금관련 이야기가 포털에떠서 그 기사보러 들어왔다가 우연히 블로그 들어왔습니다.
    종종 들리겠습니다.

나는 딸딸 엄마고 나의 남편은 딸딸 아빠다. 아들만 있는 엄마 아빠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딸의 존재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다.

기를 때 ‘아사바사’ 재미있고, 감정 표현이 자연스러우니 감동적인 순간들이 훨씬 더 많고, 집안일도 상대적으로 잘 도와주니 그야말로 살림 밑천이고, 나같이 독한(?) 엄마의 딸 처지에서는 의식주 해결하는 독립 시점이 훨씬 더 빨라지게 마련인데 딸들은 입이 삐쭉 나올지언정 잘 받아들여 준다.

이른바 출가외인이 되어도 마음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같이 놀아 주는 시간이 더 많다.(그렇지 않은 출가외인은 반성하시라.^^) 게다가 요즘처럼 부모 공양은커녕 그저 손 안 벌리는 자식이 되는 것만도 고마운 시대에는 아들 존재의 효용성은 훨씬 줄어들었다. 기둥뿌리 흔드는 아들이 안 되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딸은 퍼갈지언정 기둥뿌리 흔들기까지는 안 하거나 못하는 듯싶다.^^

게다가 딸 잘 키우면 근사한 사위 아들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금상첨화인가. 나의 장난스러운 표현마따나 ‘존재만으로도 괜히 피곤한 시어머니’가 되는 것보다 ‘존재만으로도 괜히 푸근한 장모’라는 지위를 은근히 즐기다가 가끔씩 ‘못된 장모’가 되어 보는 게 더 재미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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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에게 항상 고마워해야하고 은근히 미안해할 수밖에 없는 시어머니 지위란 영 달갑잖다. 아무리 시답잖은 며느리라 할지라도 아들보다는 훨씬 더 실질적인 수고를 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어떻게 고맙지 않고 어떻게 미안하지 않으랴.(시어머니이기도 한 나의 엄마에게 이 사실을 이해시키려 열심히 노력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영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며느리가 있는 처지보다는 사위가 있는 처지가 백 배 낫다는 나의 정서적 계산법이다.

이리저리 굴려 봐도 딸이 낫다. 오직 한 가지 안 좋은 것이라면, 장례식에서의 ‘상주’ 역할인데 여자가 상주를 서면 어색해하고 안쓰러워하는 정서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장례 문화도 엄청나게 바뀌고 있으니 여자 상주에 대해서 훨씬 더 너그러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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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명의 그리스 여신 -
아름다운 아프로디테, 사냥할 줄 아는 아르테미스, 지혜로운 아테네.
 다 가져봐라. 딸들이여. 아름다움과 추진력과 지혜를.

딸딸 엄마아빠가 이렇게 축복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딸 키우는 도전은 만만찮다. 어릴 적에는 낫지만 머리 커지면서 여러 가지 심각한 도전거리가 생긴다.

전형적으로 ‘역량 중심적 생각’을 갖고 있는 이 현실적 엄마 아빠는 수시로 여성의 사회적 제약을 환기시킨다. 딸의 진로 상담을 해 주면서도 여성으로서의 위치가 제약이 되느냐 기회가 되느냐에 대해서 따끔하게 얘기해 준다.

아직 ‘원론 중심’적 사고를 가진 두 딸은 이러한 현실적 엄마 아빠를 질책하기도 하고 우리 역시 속으로는 적잖이 반성을 하면서도 ‘알고 택하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을 수 없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만큼 위험한 것이 있으랴. 모험은 좋은 것이지만, 계획 없는 모험, 준비 안 된 모험은 진정한 모험이 아니라 객기일 뿐 아닌가.

우리 집에서 한 가지 다행인 상황은 그 누구도 결혼 변수를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다 나중에 후회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적어도 결혼 때문에 커리어에 영향 받지는 말자는 것이 묵계처럼 되어 있다.

물론 이 엄마 아빠는 “결혼은 안 할 거니? 결혼이라는 엄청난 생활충격을 어떻게 견딜 거니?” 라는 질문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 두 남녀의 젊은 시절 고민. ‘결혼은 했겠다, 떨어지지 않고 같이 공부할 수 있는 옵션은 무엇인가, 비용은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 시간은 어떻게 나누어 쓸 것인가.’ 얼마나 시시콜콜하게 고민했던가. 일보다 공부보다 오히려 결혼이 훨씬 더 어려웠었다.

아이를 일찍 낳지 않겠다는 요즈음 여성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이가 없었더라면 나의 젊은 인생 역시 훨씬 더 쉬웠었을 것이다. 유학 갔던 첫 해에 큰딸을 열 달 동안 키워준 우리 엄마의 ‘크디큰 배’를 닮을 자신도 없는 나이고 보면, ‘결혼은 늦게, 아이는 하나’ 라고 주장하는 딸딸의 생각에 고마워해야 할까?

‘아예 결혼하지 않고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이 엄마를 저 아빠는 꼬나보곤 한다.^^ 여하튼 자식을 통해 세상을 다시 살아 보는 것은 아주 즐겁고, 딸을 통해 이 힘든 세상을 다시 살아보는 것은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다.

세대가 다른 딸의 인생은 나의 인생과 그렇게 다를까? 실은 그리 다르지 않다. 여전히 세상은 충분히 변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예전보다 잘살기는 하지만 불확실성과 비예측성이 훨씬 더 심해졌다고 할까. 선택할 것은 훨씬 더 많고 정보도 더 많지만, 여전히 선택 자체는 힘들기 짝이 없다.

***

여자 조카 하나가 아이 넷을 낳았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져서 가상하다고 보훈 훈장이라도 받아야 할 판이다. 속사정은 ‘딸 소망’이다. ‘아들-아들-아들’ 다음에 드디어 딸이 나왔는데, 이 부부의 감격도 감격이려니와 온 집안 전체가 축제 무드에 빠졌단다.

“완벽해, 완벽해!” 시아버지의 탄성이란다. 그렇다. 딸은 완벽하다. 딸 가진 엄마 아빠, 행복해하자. 딸을 통해 세상을 다시 살아 보자.

*** 080717 제헌절, 김진애의 딸 생각, 여성 생각.  

지난 주에 한 번, 그저께 또 한번 여성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한번은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여성들, 또 한번은 구만리 같은 여성들을 후원하는 위치에 있는 여성들인데요. 여성들을 만나면, '어떤 모델에 대해서 생각을 안하려야 안할 수 없지요. 그리스의 수많은 신들에는 그런 완벽한 모델이 있지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 지혜의 여신 아테네. 흥미롭게도 3 여신 모두 으뜸 A로 시작하지요? Aphrodite, Artemis, Athena. 3가지 다 가져보지요. 아름다움은 기본, 전투력은 필수, 지혜는 평생토록.

제가 요새 여성들에게 얘기할 때, 두 가지는 빠지지 않습니다. 작금의 환경이 결코 여성들에게 녹록치 않다는 것.

첫째, 경제환경. 치열한 생존경쟁과 무자비한 무한경쟁이 벌어지는 세계자본주의, 보수적 자유주의에서 여성 전반이 힘든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다는 것.

둘째. 정치환경. 현 이명박정부가 균형잡힌 여성정책을 커녕 여성정책 자체가 빠져있고, 관심조차 별로 없다는 것. 자칫 여성을 '들러리, 꽃꽂이'로 여기는 퇴행이 우려된다는 것.  

현실을 직시하면서, 우리 딸들, 건투해나갑시다.

(이번 미국의회도서관의 '독도'를 '리앙쿠르록스'로 표기 변경시도를 사전 막아낸 사람이 토론토 동아시아도서관협회 회장 김하나 님, 뉴스에서 보니 담담하고 당차게 일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딸이시더군요. 꾸준하게 성실하게 당차게 용감하게 일하는 딸들에게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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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ter153 2008/07/17 11:29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저는 아들(고1) 딸(중1)있는데요..솔직히 딸이 더 좋습니다. 왜냐고요? 삐삐뽀뽀 해주잖아요...ㅎㅎㅎ... 무더위에 잘계시죠?

  2. ㅇㅇㅇ 2008/07/17 11:36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그 집에서 아들 태어났으면 서러워서 살겠나요. ㅋ

  3. ★philia 2008/07/24 14:05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저도 딸딸이 엄마인데 글읽고서는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요..^^

  4. BlogIcon 김진애 2008/07/25 05:05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글 읽고 기분좋아지시면 참 기분 좋지요? 제가 아들이 있었으면 '근사한 남자'를 세상에 선사할 수 있을텐데 하곤 했지만, 아들 키우는 부모를 보면 정말 쉽잖은 일이라고 하더군요. '삐삐뽀뽀' 해주는 딸, 그만큼 정서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어서 가깝게 느끼는 거겠지요. 딸 있는 집안은 사근사근, 소곤소곤 이야기들이 많더군요. 아들있는 집안은 시원시원? 여하튼 아들만 둘있는 집에서는 엄마가 자칫 외롭고, 우리 집같이 딸만 둘 있는 집에서는 아빠가 자칫 외로워질 수 있으니, 서로 배려해주는 맘도 필요하지요.
    아이들을 통해 세상을 다시 살아보는 즐거움을 만끽하세요. 블로거님들.

  5. 홍길동 2008/08/03 14:43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남자는 혼자 목욕탕가서 등 밀어줄 아들이 없으면 많이 슬퍼하지
    그리고 사위가 아들이라고 사위는 친 어머니라고 생각 할까요?
    님이 시어머니를 친 어머니라고 생각 안하는것 처럼 사위도 아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걸 명심하세요

    • BlogIcon 김진애 2008/08/04 04: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리사랑'이라는 말은 참 선조들의 지혜인 것 같아요.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고 장모는 사위를 아들처럼 생각하는게 자연스럽고, 물론 며느리와 사위는 그렇지 못하지요. '의무'로 얽힌 관계가 되니까.. 아들 보다 딸이 더 편한 관계가 되는 것도 딸에게 덜 의무를 지우기 때문도 있을 겁니다. 요새는 아무래도 노후의 자식 의존도가 줄어들게 되므로 아들이 갖는 부담도 덜하게 하면서 더 마음 편한 관계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지요. 자식들도 독립, 부모도 독립. 그래야 더 멋진 관계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6. 심청이 2008/08/10 00:2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딸 둘이면 금메달이네요. 그런데 조카분 대단하셔요. 시아버지의 완벽하단 말씀은 아들 셋이 앞서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60대 이상의 로망 아닌가요...아들 셋에 딸 하나.
    요즘에는 점차 고부갈등을 겪는 집이 예전보다는 적어지는 것 같아요. 아예 시집과 멀리 하고 사니까. 대신 점차 모녀갈등을 겪는 친구들이 많아요. 노후의 엄마들이 딸에게 기대를 많이 하고 '놀아줘' 모드로 나오는 데 비해, 딸의 성격이 무뚝뚝해서 또는 사정이 그렇지 못해서 그에 부응하지 못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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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슈퍼마켓만 있는 줄 아는데, 꼭 그렇지 않다. 헤이마켓이라는 노천시장이 있다. 진짜 시장이다. 사람 사는 맛이 나고, 값도 싸고, 무엇보다 모든 요리 재료들이 생생하게 나온다. 보스턴의 헤이마켓도 그 중 하나다. 유학 중 헤이마켓에서 소꼬리, 돼지족발, 소곱창 살 때, 그 때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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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톡톡히 구박받으며 3년 동안 요리 수업을 한 후 나는 드디어 두 어머니의 부엌 독재(?) 치하에서 벗어나 누구 눈치 안보고 맘껏 요리할 수 있었다.
유학 부부들은 대개 갓 결혼한 친구들이기 십상이라 친정 엄마와 시어머님의 요리 솜씨를 전수했던 나는 꽤 달인인 척 할 수 있었다.

미국의 좋은 점이라면 코스모폴리턴 푸드가 만발하고 없는 것 없이 재료가 풍성하다는 점이다. 서걱서걱한 배와 물 많은 무 만큼은 영 젬병이었지만 나머지는 대개 오케이였다.

첫 추수감사절에 한 교수 댁에 초청받아 ‘칠면조 구이’를 먹고는, ‘역시 사람 사는 곳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 동부, 그것도 보스턴의 말 빠르고 사무적인 분위기에서 살벌하게 느끼다가 그 인간적인 분위기에 대단히 감격했다. 가장 좋은 아메리칸 푸드는 햄버거나 스테이크가 아니라 ‘칠면조 구이’다. 미국 토박이 음식이기도 하거니와 상업적이지 않고 가족적이고 커뮤니티적이라 좋다. 한 마리 구워내면 적어도 열두 명은 먹고도 남아 일주일 먹을 샌드위치 감까지 생기니 일석이조의 음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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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 구이에 감동을 받아서 본격적으로 미국 푸드를 먹어보기 시작했는데, 역시 보통 미국 푸드는 별 맛이 없다. 다만 미국의 인터내셔널 푸드는 기막히다. 차이니즈, 인디안, 멕시칸, 아라비안, 거기에 이탈리안 등, 정말 없는 게 없이 있고 또 아주 맛있다.

여름-가을-겨울-봄이 한 차례 지나고 나니, 일반 슈퍼마켓, 자연식만 파는 내처럴 슈퍼마켓, 오리엔탈 슈퍼에 통달할 지경이 되었고, 갖은 종류의 샌드위치를 알게 되었으며, 코리안 슈퍼에 가서 감질나게 ‘로즈’ 표 일본 쌀, 통배추, 단무지, 간고등어 사는 것에 갈증이 날 지경이 되었다. 이 무렵, 드디어 나의 천국이 등장하였다. 바로 헤이마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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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마켓(Hay Market)이란 이름은 여러 도시에 있다. 직역을 하자면 ‘짚단 시장’인데, 지푸라기에 신선한 농작물을 싸서 달구지에 싣고 모여 열리는 노천 시장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우리의 삼일장, 오일장과 다르지 않다. 원조는 런던 웨스트엔드의 헤이마켓이지만, 영미권 도시에는 같은 이름의 시장이 여러 도시에 있다.

도시마다 헤이마켓의 특색은 다른데, 보스턴의 경우는 ‘이탈리안’ 성격이 강하다는 게 매력이다. 농축산물 뿐 아니라 어산물이 풍부하다. 위치는 다운타운 바로 외곽이다. 서울로 말하자면 동대문이나 용산 정도라 할까. 시청에서 그리 멀지 않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많이 살던 노스엔드 동네에 가깝고. 항구와 인접한 지역이라 물자 유동이 많은 위치다.

지금은 주변 동네가 아주 팬시하게 변해서 워터프론트를 따라 고급 아파트와 사무소들이 들어섰고, 옛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퀸시 마켓’도 명물로 등장했지만, 헤이마켓의 전통은 여전하다. 건물이 아니라 골목길 모양이 문화보전 대상으로 지정되어있는 블랙스톤(Blackstone) 블록 옆의 200여 미터 길이의 골목을 따라 평소 작은 식품 가게들이 있다가 토요일이면 인근 주차장과 길을 이용하여 노천 시장이 열리는 곳이 보스턴 헤이마켓이다.

헤이마켓에는 진짜 음식 재료가 있었다. 미국 친구들은 필레(fillet)라 불리는 생선살만 있는 줄로 생각하는데 여기서는 머리 달리고 지느러미 달린 ‘온 생선’을 살 수 있다. 미국 친구들은 스테이크 살코기만 생각하지만 여기서는 내장도 팔고 뼈다귀도 팔고 하물며 선지도 판다. 지중해 권 유럽 사람들은 ‘제대로’ 먹을 줄 아는 전통이 있는데 그런 전통이 보스턴에 이식되었던 덕분에, 헤이마켓에서 진짜 음식 재료를 마음껏 살 수 있었다.

토요일 새벽이면 가족 모두 나선다. 새벽에 가야 품질 좋고 또 싸다. 새우도 좋고 가재도 좋고 게도 좋다. 해덕(Haddock)이라 불리는 ‘통대구’는 어마어마하게 크다. 시어머님처럼 아가미 젓까지는 못 담그더라도 말리기에는 그만인 통대구였다. 진짜 오징어도 있는데, 스퀴드(squid)냐 커틀피쉬(cuttlefish)냐, 영어 잘 못하기는 나나 가게 주인이나 마찬가지였고. 여하튼 흥정 잘해서 잘 사면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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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꼬리는 또 어찌 그리 푸짐하던지, 한국 같으면 몇 만원 할 소꼬리를 불과 5불이면 살 수 있었다. 곱창 같은 내장은 우리만 먹는게 아니다. 유럽 사람들, 특히 추운나라 사람들도 먹어서 내장탕 수프용으로 정육점에 나와있는게 너무 신기했었다. (광우병 안전 걱정? 20년 전 그 시절에는 그런 걱정 할 필요가 없었으니 얼마나 좋았던가? 요새는 어떨지 모르겠다. 지금도 소꼬리며 내장 팔려나?)  (위 사진은 몇년 전 헤이마켓에서 열린 아트페어. 황금 색깔 소에, 갖은 추수, 짚단을 그려넣어서 여러 마리를 헤이마켓 지역 곳곳에 전시하였다.)

돼지 족을 사다 만든 편육은 각별했다. 양파, 통마늘, 대파(미국 대파는 아주 쓸 만하다), 소금 치고, 푹 고아 살을 발라낸다. 미국에는 삼베가 없으니 할 수 없이 ‘속옷’ 하나 찢어서 발라낸 살을 넣고 벽돌로 꾹 눌러서 기름을 빼면, 완벽하다. 친정엄마의 새우젓이 그리웠어라.

홍어는 없었지만, 홍어 뺨치는 가오리는 있었다. 무지막지하게 크다는 게 문제지만 우리 시장에서처럼 토막으로도 판다. 가오리 매운탕의 그 시원함이라니, 어머님의 생선 매운탕 버금갔다. 그나마 우리 생선에 가장 가까운 것은 ‘sole'이라 불리는 가자미다. 머리, 뼈, 껍질이 있는 가자미를 소금에 절였다가 서늘한 곳에서 꾸득꾸득 말리면서 어머님의 조근조근 잔소리를 기억했다. “생선 소금구이는 살짝 말려서 구워야 ‘개미’가 있단다….”

슈퍼마켓의 반 가격이면 온 가족이 푸짐하게 한 달을 지낼 수 있었으니 헤이마켓에 다녀온 토요일 브런치(brunch, 아침 겸 점심)는 마치 한국에 있는 것처럼 푸짐했다. 헤이마켓 덕에 미국 유학 생활의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지금도 가락시장이나 노량진 수산시장, 인천시장, 소래 포구 시장을 수시로 드나드는 것도 보스턴 헤이마켓의 체험 덕분일 것이다. 어느 도시로 여행을 가던지 나는 시장에 꼭 들려보곤 한다. 비엔나의 나슈마켓, 시애틀의 피시 마켓, 바르셀로나의 야시장, 베니스의 노천 어시장, 포항 죽도 시장, 광주의 남광주 시장 등, 시장에는 역시 삶의 박동이 펄펄 살아있다.

헤이마켓에서 소꼬리, 곱창, 선지 맘대로 살 수 있을 때가 정말 좋았다. 도대체 어디 출신이고 어디에서 잡은 건지 어디에서 누가 파는 건지 걱정하지 않고 음식 재료 살 수 있어야 요리도 맘대로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맘 편해야 요리도 된다.
 

*** 080712 토요일 아침 김진애 생각: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영 마음이 안된 주말이지만, 정부에서나 언론에서나 현대아산측에서나 북한측에서나 모두 차분하게 치밀하고 성의있게 풀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청천벽력 소식에 가슴 아프실 유족들께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요?   

폭염이 계속되어 밤잠 설치다가 드디어 지난 밤 비오고 기온 떨어져 잠을 푹 자고 토요일이 되니 오늘은 정말 살 것 같습니다. 요리 생각도 나고요. 오늘 토요일은 모처럼 많이많이 쉬며, 각종 요리해봐야지요.

오늘의 제 요리요? 아침에 지난 번 자랑하던 '온메밀국수' 벌써 해먹었고요. 점심에는 오랜만의 '감자전' 부쳐먹었고요, 저녁 요리는 이제부터 궁리해봐야지요.

사람들마다 각기 자신의 온전한 하루를 만드실 터인데, '토요일'은 정말 좋습니다. 저도 한 달에 두 번은 토요일 완전히 저만을 위한 날로 만든답니다. 주말 푹 쉬시기를.

(위의 사진들은 최근 보스턴 관광 관련 사이트에서 찾은 것들입니다. 여전히 헤이마켓이 건재하다는 것이 맘 푹 놓입니다. 사실 헤이마켓과 블랙스톤 지역은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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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엘에이 2008/07/12 23:0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여기는 엘에인데요. 이곳에서도 곱창을 팔아요. 이곳은 남미 사람들이 많은데, 남미 사람들도 곱창요리가 있더라구요. 또 한국 사람들이 많다보니 곱창 전문점도 있구요.

    • BlogIcon 김진애 2008/07/13 0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새 가장 불똥이 튄 업종이 '곱창집'이라고 합니다. 대구의 곱창골목도 영 힘들다고 보름 전 대구에 갔을 때 택시기사님 말씀이시고, 서울의 곱창집들 억울하다고, '냉동곱창이 아니라 생곱창을 쓰는데...'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곱창과 함께 양을 좋아하는데, 요새는 아무래도 먹을 맘이 안들어서 속상합니다...

  2. 재밌네요 2008/07/12 23:26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개미라는 말을 하시는 거 보면 전라도 분인듯 합니다. 다른 동네 분들은 그 말 잘 모르죠. 다른 말로 표현하기 상당히 힘든 말입니다.

    • BlogIcon 김진애 2008/07/13 0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주 시어머님께 배운 사투리인데, 저는 영남 사투리인 줄 알았더니 호남 사투리라는 얘기도 있더군요. 진주는 호남 영남 경계선에 있어서 퍼졌던 지도 모르지요.

      '개미'라는 말이 참 정겹지요? 저는 거의 서울사람인데(경기어투가 좀 섞여있지만), 시어머님께 요리를 배우면서 같이 배운 말이랍니다. 제 다른 글 '요리린 엄마와 시어머님의 스타일'에 그 얘기를 썼지요. "요리란 '개미'가 있어야 해!!!" 항상 되뇌이시곤 했답니다.^^

  3. BlogIcon 뉴욕 2008/07/13 09:39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지금 뉴욕으로 오기전에 보스톤에 살았었는데, 보스톤 헤이마켓이 사진에서처럼 저렇게 큰 규묘가 아닌 것 같더라구요. 제대로 구경을 안했어서 그런지 곱창이고 뭐고 파는지도 몰랐었구요, 아 아쉬워요.

    • BlogIcon 김진애 2008/07/13 1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아쉽게 되었네요. 노천시장이 크게 열리는 것은 주말이고요, 주중에는 블랙스톤 동네 가게를 따라 정육점, 과일점 등 도매 중심으로 있답니다. 오랜 전통의 집들이지요. 뉴욕에도 헤이마켓은 아니지만 노천시장 열리는 곳이 있지요? 피시마켓도 아마 있지 않나요? 맨해튼은 벗어나야겠지마는요. 시장 즐기세요.

  4. BlogIcon busylegs 2008/07/13 15:2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해안가에 있고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보스턴 같은 큰 도시나 되어야 가능한 이야기죠.
    미국에서도 아주 극소수의 지역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들이죠.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미국 어딜 가도 이런 헤이마켓이 있는 줄 오해하겠습니다.
    중서부 같은 내륙에서는 꿈도 못꿉니다. 오징어요? 시장에 메기밖에... 약간 과장해서 사람들은 바다에서 나는 건 새우밖에 못 먹는 줄 압니다.
    주변에 저런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 BlogIcon 김진애 2008/07/13 1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미국 사람들 참 재미없게 먹어요. 소고기는 '스테이크' 살코기라야 되는 줄 알고, 생선은 '필레' 생선살만 있는 줄 알고, 닭고기가 그나마 뼈와 함께 보이는 편이지요? 새우도 '칵테일 새우'처럼 다 까놓은 거만 먹는 식이고. 해안가와 오래된 도시, 그리고 여러 인종들이 섞여있는 도시, 외국인들도 많이 사는 도시들에서 그나마 헤이마켓에서 생생한 재료들이 있는 편이지요. 얼마나 여러 가지 먹고 싶으세요? 제가 보스턴에서 헤이마켓 발견했을 때 어떻게나 뛸 듯 기뻤는지요... 혹시 미국에서는 요새 택배서비스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수요가 적을 터이니 어떨지... 저는 먹고싶은 것 있을 때 막 적어놓기도 하고 했답니다.^^ 단무지가 그렇게 맘껏 먹고 싶었고 순대가 그렇게 먹고 싶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