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천생 아줌마야!”
시장에서 아줌마들과 노닥이는 나를 보고 우리 딸들이 하는 말이다.
“또 수다 떨었지요?”
가게에 들어가서 좀 미적거린다 싶으면 밖에서 기다리던 딸들이 핀잔주는 말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아줌마’라는 존재에 대해 부정적인 개념과 안쓰러워하는 개념을 같이 갖고 있다. 아줌마는 무언가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요즘 시절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아줌마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내가 묻는다.
큰딸의 정의는 실(實)을 찌른다.
“자기 얘기하기 좋아하는 게 아줌마 속성이지.” 그 말 맞다.
작은딸의 정의는 허(虛)를 찌른다.
“오히려 남 얘기하기 좋아하는 게 아줌마 아냐?” 똑똑도 하다.
“그 정의로 보면 엄마는 어떤 아줌마니?” 애들은 헷갈려 한다.
나 역시 길거리에서 하나의 아줌마다. 동네 길에서 공차는 애들에게 소리쳐 야단치고, 우리 집 담장 길을 아슬아슬 곡예 하듯 넘어 다니는 남자 애들에게 버럭 소리를 친다. 우리 딸들 표현에 의하면 ‘겁 없는 아줌마’다. 애들에게, 특히 덩치 큰 남자 애들에게 그렇게 소리 지르다 봉변당하면 어떡하느냐고 걱정스런 표정을 짓기도 한다.
내가 성숙한 여자에게 가장 높은 경외심으로 얘기하는 호칭은
‘괜찮은 아줌마’다.
글쎄, 여자들이 아줌마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한다고 한다지만, 엔간히 나이 먹은 우리 여성이라면 모두 아줌마 아닌가,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은 오죽 또 어려운가, 그러니 ‘괜찮은 아줌마’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썩 괜찮지 않은가.
하지만 ‘괜찮은 아줌마’ 소리를 듣기란 참 만만치 않다. 특히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래서 몇 가지 내 기준을 세워보곤 한다. “너무 물건 이것저것 고르지 말자, 주문을 분명히 하자, 찾는 것을 명확히 말하자, 고맙다고 꼭 말하자, 돈은 확실하게 지불하자, 새치기 운전 하지 말자, 무섭다고 피하지 말자, 등등.”
이것 말고도 괜찮은 아줌마가 되기 위한 조건은 훨씬 더 많으리라. 다른 아줌마에게 ‘괜찮은 아줌마’라 들을 수 있으면 분명히 괜찮은 사람일 것임에 틀림없다.
요새 아주 기분 좋은 것. ‘괜찮은 아줌마’들이 무척 는다는 사실이다. 괜찮은 아줌마 이상으로 한 수 더 높여 ‘빛나는 아줌마’라 표현하고 싶을 정도다.
빛나는 아줌마들,
요새 거리에서 자주 만난다.
촛불집회에 ‘유모차’ 끌고 나온 엄마들,
아이들 챙겨 나온 엄마들,
마이크를 무서워하지 않는 아줌마들,
그 연세(?)에 백팩 메고 온갖 것 챙겨 나온 아줌마들,
김밥 말아 나온다는 어떤 블로거 아줌마, 참 빛나는 아줌마들이다.
그 아줌마들이 소리 높여 나를 반가워하면, 덩달아 나도 신난다.
(사진은 데일리 서프라이즈, 황동렬 칼럼니스트님이 찍으신 사진, 빛나는 엄마들 속에 빛나는 아빠도 계시지요?)
엄마의 힘은 크다. ‘엄마는 뿔났다’만이 아니라 ‘엄마는 빛난다'.
뿔난 엄마들의 힘, 뿔난 아줌마들의 빛나는 힘은 배려, 나눔, 공감, 보살핌, 동참에서부터 나온다. 나의 인생만이 아니라 자식의 인생, 이웃의 인생을 같이 생각해주는 힘이다.
(사진은 한의사 이유명호. 모든 아줌마들에게 힘을 나눠주는 '괜찮은 아줌마'의 고수인
'빛나는 아줌마'.수많은 베스트셀러 중 한 권의 이름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이랍니다.)
딸들아, 엄마는 ‘괜찮은 아줌마가 되고 싶은 엄마’란다.
오늘밤, 빛나는 아줌마들 속에서 괜찮은 아줌마가 되어 보련다.
*** 080610 새벽 김진애 생각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이 무척 좋았던 중 하나가 여성들이 거리로 진출했다는 현상이었습니다. 통상 스포츠라면 남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너졌지요. 마침 태극 패션도 유행하고 페이스 페인팅도 유행하고, 여성들이 거리의 맛을 톡톡이 맛보았지요. 당시 20대 여성들이 주도했던 현상이었지요. 그 여성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했더니 이제 그 여성들이 거리로 나오시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2008년에는 아줌마들도 '겁없이(?)' 거리로 나섭니다. 이제 더 뜨거운 마음으로, 같이 할 사람들과 함께...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여성의 시민화는 시민사회를 뿌리내리는데 아주 중요한 기본이지요.
생활 이슈를 통해 시민으로 다시 태어나는 '괜찮은 아줌마들' 축복해 주세요.
혹시 이 글 보시는 여성님들 여전히 '아줌마' 소리 듣기 싫으신가요?
길에서 '아줌마' 소리를 들으면 퍼뜩 놀라는 그 순간, 우리 모두 공유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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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님은 괜찮은 아줌마가 아니라 똑똑함이 넘치는 아줌마가 아닌가요? 지나친 겸손인듯 합니다.ㅎㅎㅎ
'괜찮음'과 '똑똑함'은 다른 개념인것 같아요. 사람으로서 괜찮기란 인생의 계속 진행형 과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람은 시행착오가 많은 것이겠지요. 똑똑하다 평해주셔서 감사.^^
일전에 인터뷰에서 이유명호님은 "군가산점 폐지되면 여성도 군대가도 좋다"고 했었는데 정작 가산점 폐지되니까 여성의 병역의무 이행에 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셨나봐요.
본문과는 관계없지만 그냥 이유명호님의 사진을 보니까 생각이 나서 적어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싫어하지 않아요. 그 분 말씀은 어리석은 마초보다 훨씬 공감이 가고 설득력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줌마' 못지않게 20대 초반의 군필자들이 듣기 시작하는 '아저씨'라는 말도 어감이 굉장히 안좋답니다. '아저씨'의 반대말이 '오빠'인건 아시죠? ㅎㅎㅎ 생각해보면 웃기기도 한 이야기죠. 언어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사례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