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공간 그리고 정치 :: 미국 헤이마켓에서 곱창살 때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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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슈퍼마켓만 있는 줄 아는데, 꼭 그렇지 않다. 헤이마켓이라는 노천시장이 있다. 진짜 시장이다. 사람 사는 맛이 나고, 값도 싸고, 무엇보다 모든 요리 재료들이 생생하게 나온다. 보스턴의 헤이마켓도 그 중 하나다. 유학 중 헤이마켓에서 소꼬리, 돼지족발, 소곱창 살 때, 그 때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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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톡톡히 구박받으며 3년 동안 요리 수업을 한 후 나는 드디어 두 어머니의 부엌 독재(?) 치하에서 벗어나 누구 눈치 안보고 맘껏 요리할 수 있었다.
유학 부부들은 대개 갓 결혼한 친구들이기 십상이라 친정 엄마와 시어머님의 요리 솜씨를 전수했던 나는 꽤 달인인 척 할 수 있었다.

미국의 좋은 점이라면 코스모폴리턴 푸드가 만발하고 없는 것 없이 재료가 풍성하다는 점이다. 서걱서걱한 배와 물 많은 무 만큼은 영 젬병이었지만 나머지는 대개 오케이였다.

첫 추수감사절에 한 교수 댁에 초청받아 ‘칠면조 구이’를 먹고는, ‘역시 사람 사는 곳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 동부, 그것도 보스턴의 말 빠르고 사무적인 분위기에서 살벌하게 느끼다가 그 인간적인 분위기에 대단히 감격했다. 가장 좋은 아메리칸 푸드는 햄버거나 스테이크가 아니라 ‘칠면조 구이’다. 미국 토박이 음식이기도 하거니와 상업적이지 않고 가족적이고 커뮤니티적이라 좋다. 한 마리 구워내면 적어도 열두 명은 먹고도 남아 일주일 먹을 샌드위치 감까지 생기니 일석이조의 음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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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 구이에 감동을 받아서 본격적으로 미국 푸드를 먹어보기 시작했는데, 역시 보통 미국 푸드는 별 맛이 없다. 다만 미국의 인터내셔널 푸드는 기막히다. 차이니즈, 인디안, 멕시칸, 아라비안, 거기에 이탈리안 등, 정말 없는 게 없이 있고 또 아주 맛있다.

여름-가을-겨울-봄이 한 차례 지나고 나니, 일반 슈퍼마켓, 자연식만 파는 내처럴 슈퍼마켓, 오리엔탈 슈퍼에 통달할 지경이 되었고, 갖은 종류의 샌드위치를 알게 되었으며, 코리안 슈퍼에 가서 감질나게 ‘로즈’ 표 일본 쌀, 통배추, 단무지, 간고등어 사는 것에 갈증이 날 지경이 되었다. 이 무렵, 드디어 나의 천국이 등장하였다. 바로 헤이마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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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마켓(Hay Market)이란 이름은 여러 도시에 있다. 직역을 하자면 ‘짚단 시장’인데, 지푸라기에 신선한 농작물을 싸서 달구지에 싣고 모여 열리는 노천 시장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우리의 삼일장, 오일장과 다르지 않다. 원조는 런던 웨스트엔드의 헤이마켓이지만, 영미권 도시에는 같은 이름의 시장이 여러 도시에 있다.

도시마다 헤이마켓의 특색은 다른데, 보스턴의 경우는 ‘이탈리안’ 성격이 강하다는 게 매력이다. 농축산물 뿐 아니라 어산물이 풍부하다. 위치는 다운타운 바로 외곽이다. 서울로 말하자면 동대문이나 용산 정도라 할까. 시청에서 그리 멀지 않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많이 살던 노스엔드 동네에 가깝고. 항구와 인접한 지역이라 물자 유동이 많은 위치다.

지금은 주변 동네가 아주 팬시하게 변해서 워터프론트를 따라 고급 아파트와 사무소들이 들어섰고, 옛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퀸시 마켓’도 명물로 등장했지만, 헤이마켓의 전통은 여전하다. 건물이 아니라 골목길 모양이 문화보전 대상으로 지정되어있는 블랙스톤(Blackstone) 블록 옆의 200여 미터 길이의 골목을 따라 평소 작은 식품 가게들이 있다가 토요일이면 인근 주차장과 길을 이용하여 노천 시장이 열리는 곳이 보스턴 헤이마켓이다.

헤이마켓에는 진짜 음식 재료가 있었다. 미국 친구들은 필레(fillet)라 불리는 생선살만 있는 줄로 생각하는데 여기서는 머리 달리고 지느러미 달린 ‘온 생선’을 살 수 있다. 미국 친구들은 스테이크 살코기만 생각하지만 여기서는 내장도 팔고 뼈다귀도 팔고 하물며 선지도 판다. 지중해 권 유럽 사람들은 ‘제대로’ 먹을 줄 아는 전통이 있는데 그런 전통이 보스턴에 이식되었던 덕분에, 헤이마켓에서 진짜 음식 재료를 마음껏 살 수 있었다.

토요일 새벽이면 가족 모두 나선다. 새벽에 가야 품질 좋고 또 싸다. 새우도 좋고 가재도 좋고 게도 좋다. 해덕(Haddock)이라 불리는 ‘통대구’는 어마어마하게 크다. 시어머님처럼 아가미 젓까지는 못 담그더라도 말리기에는 그만인 통대구였다. 진짜 오징어도 있는데, 스퀴드(squid)냐 커틀피쉬(cuttlefish)냐, 영어 잘 못하기는 나나 가게 주인이나 마찬가지였고. 여하튼 흥정 잘해서 잘 사면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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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꼬리는 또 어찌 그리 푸짐하던지, 한국 같으면 몇 만원 할 소꼬리를 불과 5불이면 살 수 있었다. 곱창 같은 내장은 우리만 먹는게 아니다. 유럽 사람들, 특히 추운나라 사람들도 먹어서 내장탕 수프용으로 정육점에 나와있는게 너무 신기했었다. (광우병 안전 걱정? 20년 전 그 시절에는 그런 걱정 할 필요가 없었으니 얼마나 좋았던가? 요새는 어떨지 모르겠다. 지금도 소꼬리며 내장 팔려나?)  (위 사진은 몇년 전 헤이마켓에서 열린 아트페어. 황금 색깔 소에, 갖은 추수, 짚단을 그려넣어서 여러 마리를 헤이마켓 지역 곳곳에 전시하였다.)

돼지 족을 사다 만든 편육은 각별했다. 양파, 통마늘, 대파(미국 대파는 아주 쓸 만하다), 소금 치고, 푹 고아 살을 발라낸다. 미국에는 삼베가 없으니 할 수 없이 ‘속옷’ 하나 찢어서 발라낸 살을 넣고 벽돌로 꾹 눌러서 기름을 빼면, 완벽하다. 친정엄마의 새우젓이 그리웠어라.

홍어는 없었지만, 홍어 뺨치는 가오리는 있었다. 무지막지하게 크다는 게 문제지만 우리 시장에서처럼 토막으로도 판다. 가오리 매운탕의 그 시원함이라니, 어머님의 생선 매운탕 버금갔다. 그나마 우리 생선에 가장 가까운 것은 ‘sole'이라 불리는 가자미다. 머리, 뼈, 껍질이 있는 가자미를 소금에 절였다가 서늘한 곳에서 꾸득꾸득 말리면서 어머님의 조근조근 잔소리를 기억했다. “생선 소금구이는 살짝 말려서 구워야 ‘개미’가 있단다….”

슈퍼마켓의 반 가격이면 온 가족이 푸짐하게 한 달을 지낼 수 있었으니 헤이마켓에 다녀온 토요일 브런치(brunch, 아침 겸 점심)는 마치 한국에 있는 것처럼 푸짐했다. 헤이마켓 덕에 미국 유학 생활의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지금도 가락시장이나 노량진 수산시장, 인천시장, 소래 포구 시장을 수시로 드나드는 것도 보스턴 헤이마켓의 체험 덕분일 것이다. 어느 도시로 여행을 가던지 나는 시장에 꼭 들려보곤 한다. 비엔나의 나슈마켓, 시애틀의 피시 마켓, 바르셀로나의 야시장, 베니스의 노천 어시장, 포항 죽도 시장, 광주의 남광주 시장 등, 시장에는 역시 삶의 박동이 펄펄 살아있다.

헤이마켓에서 소꼬리, 곱창, 선지 맘대로 살 수 있을 때가 정말 좋았다. 도대체 어디 출신이고 어디에서 잡은 건지 어디에서 누가 파는 건지 걱정하지 않고 음식 재료 살 수 있어야 요리도 맘대로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맘 편해야 요리도 된다.
 

*** 080712 토요일 아침 김진애 생각: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영 마음이 안된 주말이지만, 정부에서나 언론에서나 현대아산측에서나 북한측에서나 모두 차분하게 치밀하고 성의있게 풀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청천벽력 소식에 가슴 아프실 유족들께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요?   

폭염이 계속되어 밤잠 설치다가 드디어 지난 밤 비오고 기온 떨어져 잠을 푹 자고 토요일이 되니 오늘은 정말 살 것 같습니다. 요리 생각도 나고요. 오늘 토요일은 모처럼 많이많이 쉬며, 각종 요리해봐야지요.

오늘의 제 요리요? 아침에 지난 번 자랑하던 '온메밀국수' 벌써 해먹었고요. 점심에는 오랜만의 '감자전' 부쳐먹었고요, 저녁 요리는 이제부터 궁리해봐야지요.

사람들마다 각기 자신의 온전한 하루를 만드실 터인데, '토요일'은 정말 좋습니다. 저도 한 달에 두 번은 토요일 완전히 저만을 위한 날로 만든답니다. 주말 푹 쉬시기를.

(위의 사진들은 최근 보스턴 관광 관련 사이트에서 찾은 것들입니다. 여전히 헤이마켓이 건재하다는 것이 맘 푹 놓입니다. 사실 헤이마켓과 블랙스톤 지역은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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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엘에이 2008/07/12 23:0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여기는 엘에인데요. 이곳에서도 곱창을 팔아요. 이곳은 남미 사람들이 많은데, 남미 사람들도 곱창요리가 있더라구요. 또 한국 사람들이 많다보니 곱창 전문점도 있구요.

    • BlogIcon 김진애 2008/07/13 0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새 가장 불똥이 튄 업종이 '곱창집'이라고 합니다. 대구의 곱창골목도 영 힘들다고 보름 전 대구에 갔을 때 택시기사님 말씀이시고, 서울의 곱창집들 억울하다고, '냉동곱창이 아니라 생곱창을 쓰는데...'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곱창과 함께 양을 좋아하는데, 요새는 아무래도 먹을 맘이 안들어서 속상합니다...

  2. 재밌네요 2008/07/12 23:26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개미라는 말을 하시는 거 보면 전라도 분인듯 합니다. 다른 동네 분들은 그 말 잘 모르죠. 다른 말로 표현하기 상당히 힘든 말입니다.

    • BlogIcon 김진애 2008/07/13 0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주 시어머님께 배운 사투리인데, 저는 영남 사투리인 줄 알았더니 호남 사투리라는 얘기도 있더군요. 진주는 호남 영남 경계선에 있어서 퍼졌던 지도 모르지요.

      '개미'라는 말이 참 정겹지요? 저는 거의 서울사람인데(경기어투가 좀 섞여있지만), 시어머님께 요리를 배우면서 같이 배운 말이랍니다. 제 다른 글 '요리린 엄마와 시어머님의 스타일'에 그 얘기를 썼지요. "요리란 '개미'가 있어야 해!!!" 항상 되뇌이시곤 했답니다.^^

  3. BlogIcon 뉴욕 2008/07/13 09:39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지금 뉴욕으로 오기전에 보스톤에 살았었는데, 보스톤 헤이마켓이 사진에서처럼 저렇게 큰 규묘가 아닌 것 같더라구요. 제대로 구경을 안했어서 그런지 곱창이고 뭐고 파는지도 몰랐었구요, 아 아쉬워요.

    • BlogIcon 김진애 2008/07/13 1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아쉽게 되었네요. 노천시장이 크게 열리는 것은 주말이고요, 주중에는 블랙스톤 동네 가게를 따라 정육점, 과일점 등 도매 중심으로 있답니다. 오랜 전통의 집들이지요. 뉴욕에도 헤이마켓은 아니지만 노천시장 열리는 곳이 있지요? 피시마켓도 아마 있지 않나요? 맨해튼은 벗어나야겠지마는요. 시장 즐기세요.

  4. BlogIcon busylegs 2008/07/13 15:2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해안가에 있고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보스턴 같은 큰 도시나 되어야 가능한 이야기죠.
    미국에서도 아주 극소수의 지역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들이죠.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미국 어딜 가도 이런 헤이마켓이 있는 줄 오해하겠습니다.
    중서부 같은 내륙에서는 꿈도 못꿉니다. 오징어요? 시장에 메기밖에... 약간 과장해서 사람들은 바다에서 나는 건 새우밖에 못 먹는 줄 압니다.
    주변에 저런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 BlogIcon 김진애 2008/07/13 1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미국 사람들 참 재미없게 먹어요. 소고기는 '스테이크' 살코기라야 되는 줄 알고, 생선은 '필레' 생선살만 있는 줄 알고, 닭고기가 그나마 뼈와 함께 보이는 편이지요? 새우도 '칵테일 새우'처럼 다 까놓은 거만 먹는 식이고. 해안가와 오래된 도시, 그리고 여러 인종들이 섞여있는 도시, 외국인들도 많이 사는 도시들에서 그나마 헤이마켓에서 생생한 재료들이 있는 편이지요. 얼마나 여러 가지 먹고 싶으세요? 제가 보스턴에서 헤이마켓 발견했을 때 어떻게나 뛸 듯 기뻤는지요... 혹시 미국에서는 요새 택배서비스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수요가 적을 터이니 어떨지... 저는 먹고싶은 것 있을 때 막 적어놓기도 하고 했답니다.^^ 단무지가 그렇게 맘껏 먹고 싶었고 순대가 그렇게 먹고 싶었었지요.^^

  5. 조석 2008/07/13 20:52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첫번째 사진에 상인이 대단한 근육질이네요. 순간 놀랐습니다.

  6. 2008/07/13 23:01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직업이 기자가 아니신듯 한데

    글을 너무 잘 쓰세요

    잘 보고 갑니다

    • BlogIcon 김진애 2008/07/22 0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블로깅은 우리 모두를 기자로 또 작가로 만드는 것 아닌가 싶답니다. '글에 대한 아주 깊은 존중'을 갖고 있는 김진애 입니다. 글을 잘 쓰고 싶고, 죽을 때까지 훈련하려 한답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매체, 글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블로그가 있어서 어찌나 감사한지요. 한글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7. 이지원 2008/07/14 09:46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전 고향이 대군데요.. 음.. 개미란 말이 뭔지 몰라서..ㅜ.ㅜㅜ. 님의 말을 이해하는데 큰 장벽이 가로막혀 있는듯...ㅜ.ㅜㅜ. ㅜ 개미란 말의 뜻을 살짝쿵 가르쳐 주시면 안될까요..^^;;;;

    • BlogIcon 김진애 2008/07/22 0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개미'는 진주 시어머님께 배운 아주 정겨운 말.
      '깊은 맛'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음식에 합당한 바로 그 맛. 입에 착 감기는 그 맛, 시어머님께서 "개미가 있어야지, 개미가 있어야지' 하는 말이 너무 재미있어서, 잘 배웠습니다.

  8. BlogIcon 강원준 2008/07/15 08:59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남미 사람들 곱창요리 먹어봤는데 넘 느끼해요...
    이름이 아마도 ....쩝...기억이 안나네요..
    두번인가 먹어봤는데...타코..엄청 맛있고 브리또..(특히 제가 좋아하는건 피쉬브리또...(맛이 거의 생선까스와 비슷..단지 차이는 핫소스...)하여간 한국식 내장탕..(곱창탕은 아님)아니네요

    • BlogIcon 김진애 2008/07/22 0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남미 요리는 전체적으로 느끼해요. 러시아 곱창요리는 든든하고 우리 내장탕 비슷하더군요. 추운 나라 요리가 우리 입맛에 잘 맞는 듯 합니다. 시원한 내장탕 맛이 항상 입안에 남아있는데... 쯧쯧. 곱창은 전골보다 구워먹는 맛이 더 좋은데... 쯧쯧 입니다.